다른 명령
편집 요약 없음 |
|||
| 7번째 줄: | 7번째 줄: | ||
==시대적인 맥락== | ==시대적인 맥락== | ||
[[파일:Figure 1. 춘추전국시대의 지도.jpg|섬네일|Figure 1. 춘추전국시대의 지도]] | |||
서주(西周)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수도를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 한다. 해당 시기에는 주 왕실의 권위가 붕괴되기 시작하며 제후국들이 독립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시점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춘추시대(春秋時代, Spring and Autumn Period)라고 한다.<br> | 서주(西周)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수도를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 한다. 해당 시기에는 주 왕실의 권위가 붕괴되기 시작하며 제후국들이 독립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시점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춘추시대(春秋時代, Spring and Autumn Period)라고 한다.<br> | ||
춘추시대에는 수많은 국가가 서로 경쟁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통치 철학과 도덕적 기반에 대한 수요가 커지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춘추시대는 외교(diplomatic), 전쟁(warfare), 학문 교류(intellectual | 춘추시대에는 수많은 국가가 서로 경쟁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통치 철학과 도덕적 기반에 대한 수요가 커지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춘추시대는 외교(diplomatic), 전쟁(warfare), 학문 교류(intellectual | ||
| 14번째 줄: | 15번째 줄: | ||
==공자== | ==공자== | ||
[[파일:Figure 2. 공자의 초상.png|섬네일|225x225픽셀|Figure 2. 공자의 초상]] | |||
공자(孔子, Confucius)는 기원전 551년에 노(魯)나라에서 출생한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인물이다. 그는 고전, 음악, 예(禮)에 정통했으며 소규모 관리직을 맡았다. 그는 일생 대부분을 제자 교육과 군주 보좌에 바쳤으나 큰 개혁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기원전 479년에 죽은 이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전승하였다. | 공자(孔子, Confucius)는 기원전 551년에 노(魯)나라에서 출생한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인물이다. 그는 고전, 음악, 예(禮)에 정통했으며 소규모 관리직을 맡았다. 그는 일생 대부분을 제자 교육과 군주 보좌에 바쳤으나 큰 개혁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기원전 479년에 죽은 이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전승하였다. | ||
| 31번째 줄: | 33번째 줄: | ||
==맹자== | ==맹자== | ||
[[파일:Figure 3. 맹자의 초상.png|섬네일|272x272픽셀|Figure 3. 맹자의 초상]] | |||
맹자(孟子, Mencius)는 춘추시대의 혼란이 더욱 심화되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의 인물이다. 그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인(仁)을 바탕으로 한 정치 조언을 하였고, 공자의 도덕정치 사상을 계승·확장하였다. | 맹자(孟子, Mencius)는 춘추시대의 혼란이 더욱 심화되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의 인물이다. 그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인(仁)을 바탕으로 한 정치 조언을 하였고, 공자의 도덕정치 사상을 계승·확장하였다. | ||
| 41번째 줄: | 44번째 줄: | ||
==순자== | ==순자== | ||
순자(荀子, Xunzi)는 전국시대 후기(기원전 3세기) 인물로, 제(齊), 초(楚)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특유의 체계적인 저술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정리하여 남겼다. | 순자(荀子, Xunzi)는 전국시대 후기(기원전 3세기) 인물로, 제(齊), 초(楚)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특유의 체계적인 저술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정리하여 남겼다. | ||
[[파일:Figure 4. 순자의 초상.png|섬네일|258x258픽셀|Figure 4. 순자의 초상]] | |||
===성악설=== | ===성악설=== | ||
2025년 9월 11일 (목) 10:02 판
상위 문서: 중국 문화와 역사
개요
해당 문서에서는 공자와 제자들(맹자, 순자)을 중심으로 유교 사상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한다.
시대적인 맥락
서주(西周)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수도를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 한다. 해당 시기에는 주 왕실의 권위가 붕괴되기 시작하며 제후국들이 독립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시점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춘추시대(春秋時代, Spring and Autumn Period)라고 한다.
춘추시대에는 수많은 국가가 서로 경쟁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통치 철학과 도덕적 기반에 대한 수요가 커지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춘추시대는 외교(diplomatic), 전쟁(warfare), 학문 교류(intellectual
exchange)가 활발히 일어나 "백가쟁명"으로 이어지는 지적 활력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선비(士, Shi) 계급이 대두되도록 하였다. 선비 계급은 소규모 귀족 출신의 지식인으로 학문과 전략을 통해 군주에게 봉사하는 계급이었다. 이 시대에는 각국의 군주들이 유능한 사상가와 전략가를 경쟁적으로 등용하였으며, 학자들의 이동성과 자유로운 사상 교류가 가능해졌다. 유가 사상도 이러한 수요에 발 맞추어 등장하였다.
공자는 당시 사회를 도덕적인 타락과 혼란의 시대로 인식하였다. 이로 인해 예(禮,Li)와 올바른 인간관계가 무너져 정치적 안정이 흔들렸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자는 예와 도덕을 회복하여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공자
공자(孔子, Confucius)는 기원전 551년에 노(魯)나라에서 출생한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인물이다. 그는 고전, 음악, 예(禮)에 정통했으며 소규모 관리직을 맡았다. 그는 일생 대부분을 제자 교육과 군주 보좌에 바쳤으나 큰 개혁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기원전 479년에 죽은 이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전승하였다.
논어(論語, The Analects as a Source)는 공자 사상을 담은 언행록이다. 하지만 이는 여러 세대 제자들에 의해 편집되었기에 일관된 철학서가 아니며, 이에 따라 맥락 속에서 신중히 읽어야 하는 자료이다.
인(仁)과 예(禮)
유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인(仁, Ren)과 예(禮, Li)이다. 인(仁)은 직역하면 "어짐/인애"를 의미하며 자비, 공감, 인간다움과 같이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다. 인(仁)은 개인 수양과 좋은 인간 관계를 통해 갈고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예(禮)는 도덕적인 성품을 형성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인(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禮)는 일상적 행동까지 포함하며, 진정성 없는 예는 무가치하다.
이에 관련한 논어의 문구 중 "군자는 도덕에 따라 행하고, 소인배는 이익에 따라 행한다"라는 문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즉, 인(仁)으로 대표되는 도덕적인 완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정명(正名)
공자는 정명(正名, Zhengming)을 강조하였다. 정명이란 직역하면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이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해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명칭과 실제가 일치하도록, 대상에 따라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와 도덕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덕치주의(德治主義)
공자는 덕치주의(德治主義, Virtue Over Law)를 강조하였다. 엄격한 법과 형벌을 통해 다스리면 원한과 반발을 낳으므로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군주가 타의 모범이 되고, 덕을 통해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덕치주의에는 군주의 교육과 자기 수양이 요구되며, 이를 통해서 사회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
맹자(孟子, Mencius)는 춘추시대의 혼란이 더욱 심화되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의 인물이다. 그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인(仁)을 바탕으로 한 정치 조언을 하였고, 공자의 도덕정치 사상을 계승·확장하였다.
성선설
성선설(性善說, Xing Shan)은 인간은 도덕적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도덕적인 성향의 실마리인 사단(四端, four beginning)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며, 이들은 적절한 교육과 환경을 통해서 덕목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발전한다.
민본주의(民本主義)
맹자는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民本主義)를 그의 정치관으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백성의 행복과 안녕(welfare)이 정치의 정당성의 근거이며, 이에 따라 백성을 버리는 군주는 천명(天命)을 상실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군주는 선정을 통해 백성을 안정시키고 번영을 이루어야 했다.
순자
순자(荀子, Xunzi)는 전국시대 후기(기원전 3세기) 인물로, 제(齊), 초(楚)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특유의 체계적인 저술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정리하여 남겼다.
성악설
그는 성악설(性惡說, Xing E)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욕망을 따른다는 주장이다. 그는 적절히 교육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은 갈등과 혼란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도덕적인 인간은 적절한 교육과 훈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그는 욕망을 질서 있게 조절하는 도구로서 예(禮)와 교육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법과 규율을 통해 사람들의 악행을 억제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사회의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장치라고 보았다.
순자와 맹자는 분명히 서로 다른 이론을 주창하였지만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아래의 도표에 잘 설명되어 있다.
| 맹자 | 순자 | |
|---|---|---|
| 공통점 | 질서를 위해 도덕적 수양은 필수이다. | |
| 차이점 | 인간은 본래 선하므로 정치가 이를 잘 이끌어야 한다. | 인간은 본래 악하므로 정치가 강제로 교화·통제해야 한다. |
공자는 덕과 예를 통한 사회 안정이라는 맹자와 기본적으로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자, 맹자, 순자는 모두 도덕적인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공통적인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후대의 유교
유교는 한(漢)대에 국가 이념으로 정착하여 교육, 관료제, 법률 체계에 장기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유교는 동아시아 문화 전반에도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