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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itle=수레바퀴 아래서|author=헤르만 헤세|publisher=민음사|translator=김이섭|image=수레바퀴 아래서.jpg}} [[분류: 소설]] [[분류: 독일문학]] ''수레바퀴 아래서''는 나의 두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은 마치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듯했다. 그 거울 속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은 한편으로 고통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슬퍼 보였다. 하지만 이 책이 나에게만 이런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삶에서 멀어진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에 깊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한스는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공명심에 떠밀려 신학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의 환경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았고, 그는 결국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온다. 잠시 평화를 찾은 듯했으나, 결국 한스는 자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강물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한스는 라틴어 수업이나 신학 공부보다는 토끼를 따라다니고, 낚시를 즐기며, 오전에 수영을 하고,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사랑했다. 그는 어울림을 좋아했고, 뒷골목의 아이들과 노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라틴어 공부였고, 그는 뛰어난 머리 덕에 누구보다 쉽게 학업을 해냈다. <!--- 이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학창시절, 나는 모범생이었다. 서귀포에서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시절, 나는 어느 모의시험에서 서귀포 지역 1등을 했다. 선생님이 보여주었던 자랑스러운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은 어린 나에게 큰 성취감을 주었고,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때 느꼈던 승리감은 묘한 도취로 이어졌다. 나는 한스처럼 내 반 친구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이 좁은 교실을 떠나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볼 날이 올 것이라고. 그들은 손에 흙을 묻히며 일할 것이고, 나는 손에 펜을 쥔 채 그들을 돌봐줄 것이라고. 그들이 공부를 안하면, 나는 마음이 편했다. 이런 생각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나의 그때 당시 오만했던 생각은, 시대를 관통하는 성공의 기준이 심어준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한국을 사는 고등학생에게 성공의 기준은 무얼까? 수능과 아마도 명문대 진학일 것이다. 수능은 쓰라린 실패로 남았다. 내가 원했던 신학 대학 – 즉, 의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마치 삶 자체가 실패로 돌아가고, 나 자신이 부정당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를 응원하던 선생님과 친구들은 마치 하일러처럼 아쉬운 눈빛과 악수만을 남겼다. 실패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나는 대학교 내내 방황하며 내가 과연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 찾으며 보냈다. ---> ''수레바퀴 아래서''는 나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했다. 한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소년의 실패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성공이라는 수레바퀴가 얼마나 무겁고, 때로는 잔인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내가 느꼈던 어린 시절의 자부심과 도취, 그리고 실패와 방황까지 모든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나의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굴레 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책은 일깨워 주었다. 만약 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린 나에게 이 책을 쥐여주고 싶다. 그리고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된다고, 너의 마음속에 뛰고있는 호기심 가득한 소년을 찾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나이든 내가 다시 이 시절로 찾아와 이런 조언을 할 필요 없도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삶이란 과연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책의 해설에서도 언급되었듯, 우리 모두는 각자의 수레바퀴를 지고 살아간다. 삶의 단계마다 수레바퀴는 이름만 바뀔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는 성적 압박, 사회에 나가면 실적과 업무라는 또 다른 수레바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원에 들어가도 논문 실적 압박이라는 새로운 수레바퀴가 자리할 뿐이다. 우리의 바쁜 삶은 수레바퀴에 깔린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패배자”라는 오명 아래 잊혀지고, 해가 지면 서서히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어느새 조용히 퇴장해버린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빠른 맥박과 흥분을 동반한 조급함에 휘둘리며, 그 조급함이 이끄는 승리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공이라는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학창시절에 범했던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승리와 성공이 아닌,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공의 탑을 쌓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탑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자가 말했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다. 즐기는 사람 이길수 없다는 것이다. 바쁜 삶의 일부분을 내어, 나는 나의 천연, 나의 원래모습은 찾아가는 시간을 내보자. 나의 삶을 비춰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정말 나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수레바퀴 속에서 길들여진 삶의 일부인가? == 어록 == <blockquote> p25. 그래도 이 방에서 그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즐거움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것은 자부심과 도취, 승리감에 가득 찬, 꿈과도 같은 기이한 시간들이었다. 언젠가는 속세에서 벗어난 높은 곳에서 우쭐대며 이들을 내려다보게 되리라는, 건방지면서도 행복에 겨운 예감이었다. p63.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오래된 포도주를 새로운 포대에 담아 전통적인 가치를 망친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얼핏 보기에 그릇된 주장들을 태연스럽게 고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비평과 창조, 학문과 예술 사이의 불평등한 오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과학은 별다른 도움 없이 언제나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언제나처럼 예술은 믿음과 사랑, 위로와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에 대한 예감의 씨앗을 뿌려왔다. 그것은 삶이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이 의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p65.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한스는 아무도 자기 곁에 다가서지 못하게 발버둥쳤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했다. p71. 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승리감으로 인해 사라져 버렸던 야망이 다시금 살아나서는 한스에게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빠른 맥박과 흥분을 동반한 승리에 대한 조급함이었다. 또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억제되지 못한 욕망이기도 하였다. p72. 선생의 의무와 그가 국가로부터 받은 직무는 어린 소년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의 조야한 정력과 욕망을 길들임과 동시에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것이다. p93. 이제 이들은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기만 하면, 죽는 날까지 국가로부터 생계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선물이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p107. 한스는 거의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새 옷을 차려입고, 녹색의 신학교 모자를 쓰고서. 그는 예전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아주 높은 세계에 우뚝 올라선 것이었다. p168. 친구 기벤라트와는 단지 악수를 나누며 이별을 아쉬워 했을 뿐이었다. p171. 허영심에 사로잡힌 교장 선생은 자기 시선이 미치는 엄청난 힘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느껴오던 터였다. p172.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 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 주었는가? p256. 저 멀리서 온갖 불행이 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와의 한바탕 말다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장에 출근해야 하는 일. 차츰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p259. 그가 어떻게 물에 빠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길을 잃고, 가파른 언덕에서 발을 헛디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다가 몸의 중심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아름다운 강물에 이끌려 그 위로 몸을 굽혔는지도 모른다. 평화와 깊은 안식이 가득한 밤, 그리고 창백한 달빛이 그를 향해 비추었기 때문에 피곤함과 두려움에 지친 나머지 어찌 할 수 없이 죽음의 그림자에 휘말려들었는지도 모른다.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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