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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교양 문서]] [[분류:중국 문화와 역사]] 상위 문서: [[중국 문화와 역사#상고시대(上古時代)|중국 문화와 역사]] ==개요== 제자백가(諸子百家, The Hundred Schools of Thought)는 춘추전국시대(기원전 6세기~기원전 3세기)에 등장한 다양한 철학·사상 학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해당 문서에서는 제자백가가 나타난 배경과 제자백가의 사상 중에서도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유가, 도가, 법가, 묵가에 대해서 다룬다. ==시대적인 맥락== [[파일:Figure 1. 전국 시대 중국의 지도.png|대체글=Figure 1. 전국 시대 중국의 지도|섬네일|242x242픽셀|Figure 1. 전국 시대 중국 지도]] 서주(西周)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수도를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 한다. 해당 시기에는 주 왕실의 권위가 붕괴되기 시작하며 제후국들이 독립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시점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춘추시대(春秋時代, Spring and Autumn Period)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패권 경쟁을 하던 제후국들은 figure 1과 같이 복잡한 세력 구도를 형성하였다. 춘추시대(동주(東周) 시대)는 정치적인 분권화와 잦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웠고, 수많은 소국들이 생존과 패권을 두고 경쟁하였으므로 새로운 혼란 속에서 리더십, 법, 사회 질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정치·도덕 이론의 실험과 발전이 이루어 졌고, 이러한 시대적인 맥락에서 제가백가가 등장하였다. 여러 철학자들은 군주의 관심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치적 안정과 사회 질서를 회복할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사상이 직접 정치적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하였다. ==유가(儒家)== 유가는 등장한 이래로 동아시아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문이자, 종교이다. 유가를 창시한 공자는 공자는 당시 사회를 도덕적인 타락과 혼란의 시대로 인식하였다. 이로 인해 예(禮,Li)와 올바른 인간관계가 무너져 정치적 안정이 흔들렸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자는 예와 도덕을 회복하여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유교|유가]] 문서를 참조해 주십시오. ==도가(道家)== [[파일:Figure 2. 도교의 상징.png|섬네일|202x202픽셀|Figure 2. 도교의 상징]] 도가는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기에 등장하였다.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있으나, 노자가 실존 인물인지는 불확실하다. 도가는 인간이 인위적 제도나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자연의 질서(자연스러운 패턴)에 맞추어 살자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의례(禮)와 사회적 위계질서를 강조한 유가와는 달리, 도가는 그러한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대안적 길을 제시하였다. Figure 2는 음양(陰陽)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이는 도가가 상반된 것의 조화와 자연스러운 균형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노자(老子)=== 노자(老子, Laozi)는 한 인물일 수도 있고, 여러 세대에 걸친 사상의 집합일 수도 있는 실존 여부가 불확실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도가의 창시자로 여겨지며, 도덕경(道德經, Daodejing)이라는 5000자 분량의 짧은 도가의 경전을 남겼다. 도덕경의 문체는 시적이고 종종 역설(paradoxical)을 사용하여 해석이 난해하다. 도덕경의 주요 주제는 겸허(謙遜, humility), 소박(素朴, simplicity), 강제성이나 과도한 행동의 위험성이다. 이는 개인의 삶을 안내하는 지침서이면서 동시에 정치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자기 수양과 국가 통치를 모두 다룬다. ===도(道)와 무위(無為)=== 도(道, Dao)는 직역하면 ‘길’, ‘방법’, ‘자연의 이치’이다. 하지만 도가에서는 '도'란 모든 것의 근원이며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궁극적 원리이다. 따라서 인간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억지로 인위적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사는 것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무위(無為, Wu Wei)는 도에서 비롯된 도가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무위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억지로 힘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내려 하기보다, 사물과 상황이 스스로 전개되도록 두는 태도이다. ===도가의 정치=== 도와 무위의 개념을 정치적으로 확장하면 국가가 과도한 법과 규제를 피하고, 꼭 필요할 때만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따라서 도가에서 통치자의 역할은 직접 통제하기보다 은은하게 백성의 방향을 잡아(leading subtly)주는 존재이다. 이와 관련한 도덕경의 구절로 도덕경 57장이 있다. 이는 아래와 같다: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은 더욱 가난하고, 백성이 이로운 물건을 많이 가지면 나라에 어두움이 많다. 사람들이 교묘한 재주가 많으면 기묘한 물건이 많이 생기며, 법령이 많아지면면 도적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내가 무위함으로써 백성이 스스로 변화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여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벌임이 없으므로 백성이 스스로 풍부하고, 내가 (사사로운) 욕망이 없으므로 백성은 스스로 순박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규제와 법령을 늘리면 오히려 그에 따른 부작용(저항, 혼란)이 더욱 커지므로, 이상적인 통치는 백성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지도자는 모범과 절제를 통해 다스려야 하며, 백성에게 사소한 것까지 간섭해서는 안된다. 정리하자면, 도가에서 이상적인 국가란 크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평화로운 소국(小國)이다. 이를 위해 대외적으로는 대규모 전쟁과 확장을 반대하고 평화와 자율성을 중시한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결과를 강제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도가의 정치적인 비전은 끊임없는 전쟁과 권력 다툼에 지친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유가와의 비교=== 유가와 도가는 모두 조화를 가치있게 보지만 접근 방식은 다르다: * 유가: 질서와 관계를 통한 사회적 조화 ** 유가는 인간관계, 사회적 책임, 도덕적 자기 수양을 강조한다. ** 인(仁)과 예(禮)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를 추구한다. * 도가: 자연을 따르는 무위의 조화 ** 도가는 이와 달리 정치에서 물러나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삶을 추구한다. ** 이에 따라 사회 제도보다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자연과의 조화를 더욱 중시한다. ==법가(法家)== 법가(法家, Ligalism)는 전국시대 중·후기에 형성되었으며, 잦은 전쟁 속에서 개혁적인 재상들이 실용적인 정치철학을 발전시키며 대두되었다.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상앙(商鞅),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가 있다. 법가의 목표는 국가를 군사적으로 강하고 행정적으로 효율적인 체제로 만들어,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이나 이상보다는 결과와 실질적 성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pragmatism)적인 접근 방식이다. ===법(法), 술(術), 세(勢)=== 법가의 핵심 원리는 법(法, Fa), 술(術, Shu), 세(勢, Shi)이며, 이는 국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군주가 활용해야 하는 것들이다. 먼저 법(法)이란 말 그대로 법을 의미하는데, 명확하고 공개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즉,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차별없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 집행이 국가 질서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술(術)은 군주가 신하들을 관리하는 행정적인 기법을 의미한다. 이는 권력자가 신하를 견제하고 통제하는데 사용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세(勢)는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한 군주의 강력한 권위와 권력을 의미한다. 법가에서 권력은 개인의 덕성(virtue)이 아니라, 군주의 지위와 권위에서 비롯된다.<ref>즉, 군주의 힘은 개인적 인품이 아니라 구조적 위치에서 나온다.</ref> 지금까지 강조했듯이 법가의 요체인 법, 술, 세는 모두 군주의 절대권력을 위한 장치이며, 이는 법가가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중앙집권체제를 추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가의 인간관=== [[파일:Figure 2. 한비자의 초상.png|섬네일|301x301픽셀|Figure 2. 한비자의 초상]] 법가에서 인간은 본래 선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에 따라 법가의 사상가들은 사람을 교화하거나 도덕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보상과 처벌를 통해 행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 믿을 수 없고 비효율적이라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비자가 한 말이 있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형벌이 무겁고 상이 후하면, 군주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진다." 즉, 한비자는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인센티브(보상)와 억제책(처벌)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한비자는 덕성(virtue)이나 도덕이 아니라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목표로 삼았다. 즉, 사회를 기계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철저히 이론화하여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법가에서 인간 본성을 악(惡)하다고 규정한 것은 [[유교#순자|순자]]의 관점과 비슷하지만, 순자는 교육과 예(禮)로 교화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구별된다. 법가는 교화에 대한 신뢰 자체가 없을 뿐더러 인간 본성에 대해 더욱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의 법가=== [[파일:Figure 3. 분서갱유.png|섬네일|263x263픽셀|Figure 3. 분서갱유]] 법가는 진(秦)나라에서 수용되어 급격한 중앙집권화와 통일을 추진하는데에 사용되었다. 법가에 기반한 진나라는 도량형, 문자, 화폐를 통일하여 행정적인 효율과 국가의 통합을 강화시켰다. 또한 법가는 엄격한 군율과 강력한 관료제를 확립하여 군사력을 강화하는데에도 기여하였다. 이는 진나라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법가의 지나친 강압 정책은 백성들의 불만을 키워 결국 진 제국의 멸망에도 기여하였다. Figure 3는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대한 그림이다. 분서갱유란 진시황이 법가 사상가인 이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제자백가의 책들과 시경(詩經), 상서(尙書), 진나라를 제외한 국가들의 역사서를 불태우고, 전국의 불온 사상가 460여 명을 매장한 사건을 의미한다. 이는 진시황 정권의 법가적 통치의 엄격함과 폭압성을 보여준다. 즉, 법가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었으나, 장기적으로는 불안정과 반발을 불러왔다. 이때 문에 후대의 유학자들은 법가를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라 비판하였으며, 특히 지나친 형벌과 강압적 제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진 제국이 멸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가적 행정 제도(법률·관료제·통치술)는 이후 왕조들에도 일부 계승되었다. 겉으로는 유교적 이념을 표방하면서 실제 운영은 법가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묵가(墨家)== [[파일:Figure 5. 묵자의 초상.png|섬네일|202x202픽셀|Figure 5. 묵자의 초상]] 묵가(墨家, Mohist)는 묵자(墨子, Mozi)에 처음 주장된 철학이다. 묵자는 기원전 5세기 중반에 활동한 사상가로, 원래는 유학자였으나 나중에는 비판자로 전향하였다. 그는 사치스러운 의례 혹은 예식이나, 대형 건축, 전쟁과 같은 낭비적인 사업을 반대하였다. ===겸애(兼愛)=== 묵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겸애(兼愛, Jian Ai)인데, 이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 가족, 내 공동체, 내 국가에 걸쳐 사랑을 확장하는 유가적 친애(親愛)와는 다른, 보편적·평등적 사랑의 개념이다. 이에 따라 묵가는 실질적인 이익(utility)과 공공의 복리를 우선으로 보았다. 묵가는 어떤 행위든 그것의 당위성을 사회 전체의 복리에 기여하는지 여부로 판단했으며, 이는 오늘날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과 유사한 원리를 보여준다. 즉, 묵자는 백성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정치와 윤리의 핵심 기준으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묵가는 정치적으로 이상적인 관직 등용이 출신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등용이라고 여겼다. 귀족 혈통 중심의 봉건 질서와는 달리 실력주의(meritocracy)가 더 많은 공공 복리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또한 묵가는 공격적 전쟁을 강하게 반대했다.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인명과 자원을 낭비하기 때문에 사회에 해롭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묵자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만약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여긴다면, 누가 그 나라에 대항해 군대를 일으키겠는가?” 이는 겸애를 통해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돌본다면 갈등의 원인이 사라질 것이라는 묵가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기타 사상들== 아래는 위의 대표적인 네 학파 외에도 큰 족적을 남긴 학파들이다: * 종횡가(縱橫家, School of Diplomacy): 외교·동맹·전략에 능했던 모사들의 학파이며, 합종연횡(合縱連橫) 전략으로 유명하다. * 음양가(陰陽家, Yin-Yan): 우주 만물을 설명하는 음양론과 오행(五行, Five Phases)<ref>목, 화, 토, 금, 수를 의미한다.</ref> 이론을 정치, 의학, 군사 등에 적용하였다. * 병가(兵家, Military Theory): 후대 중국·동아시아 군사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손자(孫子)의 《손자병법》이 대표적이다. ==후대에 대한 영향== 진(秦)나라는 강력한 법가적 구조(법률·중앙집권)를 채택하고, 유가적 요소는 거의 배제하였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진나라를 이른 시기에 멸망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한(漢)나라는 유교적 이념에 입각하여 통치하였으나, 실제 행정 체제는 법가적 기틀을 유지하였다. 즉, 유교 이념 + 법가 행정이라는 혼합 모델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혼합 체제는 수 세기 동안 지속적인 정치·행정 질서의 기초가 되어 후대 제국 통치의 전형이 되었다. ==각주==
제자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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