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상위 문서: 중국 문화와 역사
개요
해당 문서에서는 명(明, Ming)나라가 어떻게 형성되고,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설명한다.
역사
후금의 건국
여진족은 본래 통일된 민족이 아니라, 여러 부족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지만 16세기 후반, 명의 통제력 약화와 무역 제재로 여진 사회 내부에 경제·군사적 긴장이 축적되었고, 이 상황을 틈타 누르하치(ᠨᡠᡵᡤᠠᠴᡳ, Nurhaci)는 만주의 여진족들 사이의 혼인, 외교, 전쟁을 통해 점진적으로 통합에 성공하여 후금(後金, Late Jin)을 건국하였다. 이때, ‘여진 부족 통합’은 단순한 부족 연맹에서 그치지 않고 군사·행정 조직인 팔기제(八旗制, Eight Banners)의 창설로 이어졌다. 또한 누르하치는 몽골 귀족들과 동맹을 맺었고, 조선과도 동맹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사르후 전투(Battle of Sarhū, 1619)는 만주 지역 여진족의 독립과 통일을 확정지은 전투이다. 사르후 전투는 조선, 명나라, 예허 여진족 연합과 후금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해당 전투는 후금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후금은 예허 여진족 까지 정복하여 여진족의 통합이 완성되게 된다. 또한 명나라는 이 시점부터 방어적으로 태세를 전환하였으며, 조선은 명의 요청으로 참전했으나 큰 피해를 입고, 이후 후금과의 관계 재정립을 한다. 이 승리 이후 누르하치는 자신을 ‘천명(天命)을 받은 자’로 인식하며 제국 건설을 추진했다.
청나라의 건국과 조선 정벌
홍타이지(ᡥᠣᠩ ᡨᠠᡳᠵᡳ, Hong Taiji)는 누르하치의 아들로, 후금의 제2대 황제이다. 홍타이지는 1636년 ‘청(淸, Qing)’이라는 국호를 선포하여 청 왕조의 실질적 창시자로 불린다. 또한 그는 1635년에는 몽골을 정복하였으며, 조선을 두차례 침공하여 1636년 조선을 청의 조공국으로 만들었다. 조선은 이를 계기로 왕자들과 귀족 자제들을 심양(Shenyang)에 인질로 보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삼전도비를 설치하였다. 또한 조선은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의 대명 전쟁에 합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외교 관계 변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의 근본적 재편, 즉 명 중심의 화이(華夷, Hua–Yi) 질서가 무너지고, 만주 중심의 새로운 질서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홍타이지는 몽골정복을 불교적 정당성(티베트 불교와의 연계)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청 왕조는 불교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신성한 제국’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는 Figure 에서 보이는 청 황후의 초상에서 염주에서 따온 구슬 장신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여진(Jurchen)”이라는 이름을 폐지하고 “만주(Manchu)”로 대체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문수보살(Manjushri, 지혜의 상징)와 만주를 연결하여, 황제가 그 화신이라는 불교적 상징정치를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