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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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당(唐)나라는 수나라의 뒤를 이은 중국의 통일 왕조이다.
당나라의 건국
당나라는 이연(李淵)에 의해 618년에 건국되었으며, 그 해에 이연은 고조(高祖)로 즉위하였다. 당나라는 수도를 장안(長安, Chang’an)으로 삼았으며, 수나라의 대부분의 전통과 제도를 이어받았다. 동시에 더 오래된 한나라/주나라의 전통을 받아들여 새로운 전통 왕조로서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당나라의 초기 안정
당나라는 후기 수나라의 많은 반란과 군벌들 중의 하나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여러 군벌과 반란을 진압하였다. 또한 수나라의 제도를 계승하되, 지나친 강압 대신 실용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또한 황제 자신을 "도덕적이고 하늘의 인정을 받은 통치자"로 강조, 백성과 귀족의 지지를 끌었다. 이는 천명(天命) 사상과 연계되어, 수나라의 과도한 전쟁과 토목 공사가 천명을 잃게 했다고 비판하였다. 반면 자신들은 덕치(德治, 도덕적 통치)로 천명을 회복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유교, 도교, 불교를 모두 수용하여 이데올로기적 포괄성을 확보하였다.
당나라 사회
당나라의 법
당률(唐律, Tang Legal Code)는 법가(法家)의 엄격한 법을 적용함은 물론, 유교적인 도덕 규범을 결합하였다. 이를 통해서 단순히 처벌이 아니라 윤리적 교화를 함께 강조하였다. 이는 동아시아 전체(한국, 일본, 베트남)의 법체계 모델이 되었으며, 법과 도덕의 균형이라는 전통을 확립하였다.
당나라의 종교
당나라는 도교, 불교, 유교를 모두 받아들여, 다양한 종교/사상이 공존하였다:
- 도교(道敎, Daoism): 제자백가#도가(道家)에서 발전한 민간 사상으로, 황제를 도교적 이상과 연결하기 위해 황실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 불교(佛敎, Buddhism): 불교는 국가의 지원 아래 크게 번성하였으며, 대규모 불교 사찰과 불상이 건립되었다.
- 유교(儒敎, Confucian): 유교는 여전히 교육과 정치의 기본 틀로 여전히 존속하였으며, 인재 등용에 반영되었다.
이는 유불선이 동시에 공존한 당나라의 포용성과 문화적인 풍요를 보여준다.